


닉 드라나소의 무상상력
March 3, 2026
ORIGINAL ARTICLE BY "KATIE LANE"

TRANSLATED BY BEAM
닉 드라나소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래픽 노블리스트인데,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연기 수업"을 분석하는 케이티 레인의 기사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들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수치심, 두려움, 그리고 지루함의 상호작용적 관계는 그들의 정상적인 현실 (백인 중산층의)의 한계를 유지할 수 있게한다. 드라나소는 이런 묘사의 명실상부한 장인이다. (...)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드라나소가 사실 앞서 언급한 만화가들에 비해 묘사가 적기 때문이고 - 그에게 있어서는 적은 것이 많은 것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더 절제되어 있고, 더 네모낳다. 더 납작하고, 덜 감정적이며 덜 용감하다. 대사말고는 모든것이 덜하다. (...) 드라나소의 승리는 납작함의 명쾌함에서 온다. 그 완전한 가독성의 확신."
제가 드라나소의 작품을 접하게 된 이유는 솔직히 그림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레인이 언급하듯 저는 개인적으로 이 '납작함의 명쾌함'이 굉장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가 하려는 이야기 안에서는)
"이 책의 전제이자 흥미로운 부분은 사회의 관습적 지루함에 존재적으로 얽매인 드라나소의 캐릭터들의 탈출을 향한 강렬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들을 향한 자기 혐오와 분노, 그리고 길을 잃게 된 어떤 구조적 원인을 거부하고 상상력을 갖는 것. 그 욕망은 상연을 통해 재현된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근본적으로 자신을 위한것. 완전한 인물이 될 수 있는 새로운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것. 연기 수업의 긴장감은 시각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이것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위치한다."
이 부분은 그의 첫 출판작품인 '베벌리'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탈출을 향한 강렬한 욕구.
"드라나소는 사회를 향해 '사람들은 우울하고 천편일률적이다'라는 명제를 밀고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수업에서 조금씩의 자유는 엿보인다. 페이지 전면, 반, 혹은 1/4을 스플래시로 덮으려는 시도가 엿보일때, 우리의 현실보다 나은 현실을 묘사하려는 이 시도는 섬세하고, 공상적이며 파격적이다. 구조적으로, 드라나조의 박약한 표정 묘사가 담긴 페이지들 중에서 이러한 탈출의 표현은 자신의 상상이 칸 속에 묘사된 캐릭터들 뿐만 아니라 읽는 이들 역시 사로 잡는다."
제가 드라나소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묘사에 있어서 드라나소는 절대 공격적인 대사나 과장된 제스처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 임팩트있는, 예술적 연출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배우가 자아와 상상의 세계를 실현화 하기 위해서는 그가 사회를 떠나 대안 공동체에 가입을 해야만 한다. 끝이 없는 시나리오 속으로 실어 날라줄 하얀 밴을 타는 것이다. 철저히 다른 사람, 다른 곳,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이가 되기 위하여. 대신, 배우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뮬레이션과는 다른 시뮬라크럼에 존재해야만한다. 앞서 언급한 스플래시와 같은 방식으로 드라나소는 시각적 묘사에 있어서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않는다. (...) 드라나소의 책 속에서는 현실에 존재함과 동시에 자기 실현적인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고립속에서나 개개인을 기반으로는 실현화가 불가능하다. 이 시나리오들은 공동으로 경험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와닿았던 부분입니다. 개개인을 기반으로는 실현화가 불가능한 것이 만악의 근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인의 필수성.
"연기수업의 일부이건 아니건, 현실은 여럿이 동의하는 중론이다. 이 두 선택지들의 유일하게 다른 점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외부 조건이 존재하느냐 마냐이다. 만화는 어떻게 정신적 틀 속 사회를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한지, 혹은 사회 내에서 "사람들을 슬프고 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에서의 탈출이 어떻게 구조적이나 공동적으로 작동할지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지 않는다. 드라나소에게 이러한 질문들은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겉"과 "안"의 묘사가 실질적으로 "나는 이상하지만 이 공동체에서는 행복하고 내가 원하던 모든것을 가질 수 있어" 이거나 "나는 비참해도 사회적 안녕의 정상적 가치에 순응해"에 한정되는 것에 편안해져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게 이런 것들의 작용 방식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극 안에서는 이야기적 의미가 있는, 주제적으로 명확한 분석이며 이야기와 감정선의 균형을 잡는 만화 작법인것은 맞다."
굉장히 유의미한 비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드라나소는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은 그저 '관찰'에 불가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그의 전작들도 마찬가지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허무주의적 작품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작품을 더 좋아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사회의 "밖"을 향한 추구는 공동으로 성취해야만 한다. 이 밖의 모든 것들은 무-상상력의 세계이다: 사회가 자신에 대해 꾸는 꿈. 흐리멍텅한 덩어리 얼굴들 속의 감금, 패널 구성, 순서, 정신 이상, 신자유주의 같은 단어들, 우리가 "명확함"이라고 부르는 무의미한 책임들 - 이것이 현실이다. 궁극적인 난제는 누군가에게 이 세상에서 현실이 선택이었던 적이 있냐는 것일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선택이었던적이 딱히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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